잊혀질 권리에 대해 취재해 보았습니다.




막연하게 당연히 필요한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쟁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기사 링크를 검색 사이트에서 삭제할 수 있게 허락하는 부분입니다. 지난해 '구글 재판'으로 유명한 EU 사법재판소의 판결이 대표적이죠. 스페인의 변호사가 자신의 집 경매 처분 사실이 담긴 기사를 구글 검색 결과에서 지워달라는 요청이었는데, EU 사법재판소가 변호사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이로 인해 내 기록도 지워달라는 접수가 두달 만에 10만 건 넘게 들어왔다지요.

스페인 변호사는 빚 때문에 집을 팔았지만 이를 진작 해결됐는데도 계속 이 내용이 구글을 떠돌아 다니고 있어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만약 이 변호사에게 내 사건을 맡기려는 누군가가, 특히나 빚 문제로 변호사를 찾는 누군가가, 이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기기 전에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구글을 검색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런 방식은 사실 일상다반사이기도 하지요. 맛집이 알고 싶을 때, 소개팅 상대가 누군지 알고 싶을 때 등등 검색부터 하니까요. 그래서 검색 결과 이 변호사가 과거 빚 때문에 집을 팔았다는 기사가 뜰 경우와 뜨지 않을 경우, 이 변호사에 대해 내가 갖게 되는 인상은 천지차이일 것입니다. 전자의 경우라면 아, 이 사람 못 믿을 사람이구먼, 부터 나랑 비슷한 경험을 겪었으니 내 사건을 더 잘 이해하고 처리하겠구먼, 까지. 그런데 후자의 경우라면? 만약 이 스페인 변호사에 대한 좋은 기억만 구글에서 검색된다면?


이것이 만약 이 변호사에 대한 정보와 인상을 교묘히 변형시키는 것이라면 어떡하겠습니까. 잊혀질 권리라는 '디지털 지우개'가 좋은 기록만 남기고 나쁜 기록은 모조리 지운다면? 일개 변호사니까 괜찮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만약 잊혀질 권리를 주장하는 주체가 정치인이나 기업이라면요?


오늘날 SNS 시대는 평판의 시대입니다. 이미 트위터 같은 곳은 '조리돌림' (public shaming)의 멍석판 같은 곳이기도 합니다. 평범했던 기업 홍보팀 사원도 오해를 살만한, 명백히 잘못했다는 게 아니라 오해를 살만한 멘트 하나 트위터에 남겼다는 이유로 조리돌림을 당한 끝에 직장을 옮겨야만 했던 경우도 있습니다. 정치인이나 기업들도 평판에 엄청난 신경을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렇지만 이들이 만약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보 (이지만 공익적 목적으로는 유용한 정보)를 지우기 위한 수단으로 '잊혀질 권리'를 들고 나온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일부 법학자들과 시민단체에서 '잊혀질 권리'의 법제화를 우려하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잊혀질 권리가 필요해 보이는 건 분명합니다. 기록이 되고 수집이 되고 공유가 되어버리는 세상이니까요. 인터뷰에 나오는 사례를 보고 본인이 했으니 당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투의 댓글들이 눈에 띄는데, 한 번의 잘못이 주홍글씨가 되어도 좋다는 말로 들립니다. 옳지 않습니다. 더구나 본인이 원치 않았는데도 피해를 입는 사례도 많습니다. 치맛속 몰카를 찍어서 올린 사람이 잘못이지 찍힌 여성에게 대체 무슨 죄가 있을까요.


잊혀질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현재의 법이 정비되어야 할 필요도 분명히 있습니다. 취재를 했던 온라인 기록 삭제 전문 업체 대표가 든 여중생 사례에서 이 소녀가 죽음에 이른 데에는 숨겨진 사연이 있습니다. 자기 알몸 사진과 동영상이 반 전체에 퍼진 사실을 알게 된 뒤, 삭제를 하고 싶었는데, 그럴려면 사진과 영상이 올라간 사이트에 부모 동의서를 제공해야 했던 겁니다. 그 소녀는 부모에게 도저히 말을 못하고 끝내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부모 동의서라는 법체계와 소녀가 처한 상황의 괴리가 낳은 결과였던 겁니다.


그렇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정치인이나 기업들이 이른바 '이미지 세탁'을 위해 '디지털 세탁'을 이용한다면, 문제는 심각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잊혀질 권리가 언론의 보도 권리, 국민의 알권리와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겁니다. 포털이나 검색사이트를 통하지 않고 기사를 접속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요? 특히나 조금 과장하자면 '네이버 왕국'에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그렇기 때문에 잊혀질 권리의 대상을 누구로 할 건지, 범위를 어디까지 할 건지, 어떤 방법으로 할 건지가 매우 중요하고도 까다로운 문제로 남게 되는 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전제로 '잊혀질 권리'에 대해 풀어보려 했는데 2분짜리 리포트라는 틀에 박힌 형식으로는 모자라도 한참 모자랐습니다. 이쪽 분야를 담당하게 된 이상 잊혀질 권리의 법제화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속적으로 살펴보겠다는 약속으로 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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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질 권리, 필요하긴 한데...  (0) 2015.05.16

WRITTEN BY
양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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