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은 누구일까

쓰다 2013. 2. 28. 14:15

우리 회사 후문 골목에는 조그만 편의점이 하나 있다. 

협소한 곳이지만 회사들이 몰려 있는데다 

주인 아저씨 성격까지 싹싹해 직장인들의 숨통 역할을 해주곤 했다.

담배나 간식 따위를 사며 잠시 바깥 공기를 쐬긴 제격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회사 후문 바로 앞에 건물이 세워지더니 

1층에 새로운 편의점이 들어왔다. 

그것도 기존에 있던 편의점보다 네 배쯤은 큰 크기로.



테이블과 의자까지 번듯하게 갖춰져 있어 그곳은 곧 새로운 휴식공간으로 떠올랐다.

직장인들로 늘 북적였고, 

삼각김밥 같은 물건은 점심시간 무렵이 되면 구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상대적으로 예전의 그 조그만 편의점은 텅텅 비게 되었다.

나름 단골 편의점을 이용하겠다는 나의 결심 조차 언젠가부터 조금씩 무뎌지더니

이제는 습관처럼 새로 생긴 큰 편의점으로 가게 되었다.



예전의 작은 편의점 사장은 애써 내색은 안하려는 눈치였지만 

팍 줄어든 매출에 울상을 짓고 있었다. 



자, 우리가 보아오던 영화나 만화의 장르적인 관습에 따르자면 

새로 생긴 그 큰 편의점은 악당이어야 한다.

자본의 힘을 등에 업고 규모의 경제를 밀어붙이는 악당.

그렇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힘을 합쳐 악당과 싸우고 

작은 가게를 구해내 공동체의 선을 회복해야 한다.



하지만 그건 컨벤션일 뿐. 

컨벤션은 이미 익숙한 구조를 따르기 때문에 즐기는 데 고민이 필요없다.

그것이 컨벤션의 최고의 장점이다.



현실은 전혀 다르다.

무엇보다 당황스러운 건 새로 생긴 큰 편의점 주인 부부 역시 

무척이나 친절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다는 점이다.



안타깝지만 이 현실 세계에서 악당이란 건 성립되지 않는다.

선한 이웃만 있을 뿐.

그들은 다만 자기가 지니고 있는 총알을 밑천 삼아 먹고 살기 위해 일할 뿐이다.

그들은 최선을 다하면 (신의 뜻에 따라) 성공할 거라는 프로테스탄트적인 윤리를 

각자의 방식대로 열심히 실천하는 중이지만 

문제는 그 노력들이 이웃끼리 경쟁의 톱니바퀴가 되어 승자와 패자를 가르고

누군가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나의 반문.

왜 선한 이웃들이 열심히 사는데 누구는 웃고 누구는 울어야 할까.

이런 세상은 공정한가. 

나의 대답. 

아니오.

이런 결과라면 그런 결과를 낳는 원인이 있을 것이다.

악당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진정한 악당이란 바로 이런 결과를 낳는 원인이란 녀석이 아닐까. 

그렇게 치자면 우리는 한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참으로 거대한 녀석과 상대해야 하는 셈이다.

즐거운 일은 아니다.


WRITTEN BY
양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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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문화면이 대부분 할리우드에 간 김지운의 인터뷰로 채워져 있는 가운데 드물게 왕자웨이에 관한 기사도 실렸다. 

기사를 보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영화엔 세가지가 없다. 스턴트맨, 와이어액션, CG. 그런 것들을 쓴다면 쿵후 영화일 뿐이다." 


행간으로 미뤄보건데 왕자웨이가 찍고 싶은 건 쿵후가 아니라 무협이었나 보다. 

10년 전 와호장룡이 사람들 눈을 홀리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을 때, 


허우 샤오시엔은 단칼에 그 영화는 사기라고 말했다.

씬에서 보여지는 중력의 세계가 서로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뒤 중국과 홍콩, 대만의 트라이앵글 속에서 각각 빛나는 성취를 보여준 


지아 장커와 왕자웨이, 허우 샤오시엔이 모두 무협 영화를 준비중이란 소식이 들렸다.

나는 그들이 찍은 무협 영화를 보고 싶어 목이 빠지게 기다렸는데 


거의 10년이나 지나서야 왕자웨이가 무협 영화를 들고 나타났다.



생각해 보면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주변을 흐르는 시간이란 중력의 무게를 거슬러 올라가고 싶어했다. 


머리에 떠오르는대로 복기해보면,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에서는


키스와 타르트의 달콤한 모습이 언제까지 지속 가능할까 내기라도 하듯 그 둘이 중첩되는 모습을 반복했고, 


<중경삼림>과 <타락천사>에서는 스텝 프린팅으로 영화 속도의 표준을 거슬러가려 했으며,

<2046>에서는 (아마도) 문화혁명 시기 홍콩과 80년 뒤인 2046년의 SF 사이를 시침 뚝 떼고 오고갔다.

그리고 이제는 거의 모든 영화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스턴트맨과 와이어과 CG 없이 액션을 찍었다.

이번에도 영화 환경을 둘러싼 시간이란 중력의 무게를 다시 한번 거스른 것이다.

그의 영화 속 중력의 세계는 어떤걸까.



베를린영화제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한 기자는 물었다. 

(링크된 페이지에서 맨 처음 올라온 동영상을 찾아보면 나온다.)


"영화 작업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도전은 무엇이었습니까."


(내가 이해한대로 번역해보면) 왕자웨이는 (이렇게) 답했다.




"제게 가장 큰 도전은 전 무예를 할 줄 모른다는 점입니다. 


제가 무예 팬이어서 쇼나 소설이나 영화를 보긴 했는데


이번 여정에서 저는 직접 해본 적 없단 사실이 무척 아쉬웠습니다.



사람들은 무예를 폭력이나 무력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3년 동안 나이든 무예의 대가들을 만나면서 저는 무척 놀랐습니다. 


그들은 사실 매우 겸손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은 쿵후가 스포츠 아니면 건강이나 챙기는 요가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관점에서 쿵후는 사람 목숨을 뺏거나 지키는 무기입니다. 


제가 만나본 고수들은 모두 겸손하고 점잖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 손에 무기가 있단 사실을 매우 잘 알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면 한 어린 소년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창문을 통해 교실 속을 바라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건 저 자신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과거에 그런 경험이 있었으니까요.



동시에 영화 감독으로서 저 일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를 막 시작하는 저 자신 말이죠.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난 뒤의 저 자신이기도 합니다. 


이 여정은 무척이나 흥미롭고 다양한 층들로 이뤄져 있었습니다. 


저는 할 수만 있다면 여기에 시간을 더 쏟고 싶었습니다."



할수만 있다면 무예에 대한 배움에 시간을 더 쏟고 싶길 소망했다는 왕자웨이.


그가 이번에 주조한 시간의 중력은 어떤 쾌감을 불러일으킬지, 


두근거리며 기다려 본다. 




WRITTEN BY
양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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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본 광고이다. 

상단에는 "홍길동이 호부호형을 못 하는 이유는 홍길동의 [ ] 때문이다!?"라고 적혀 있다. 

이유가 설명되어야 할 곳을 괄호로 처리한 것은 그 이유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이유는 시선을 조금만 아래로 내리면 곧 알게 된다. 

중앙과 왼쪽에는 럭셔리해 보이는 3명의 남자가 활짝 웃고 있다. 큰 눈, 오똑한 코, 갸름한 턱을 지니고 있다. 

캐리커쳐의 세계에서 이는 전형적으로 잘생긴 외모를 지칭하는 기호들이다. 

여기에다 어디서 흘러나오는 빛인지 모르겠지만 반짝반짝 빛나기까지 한다.

반면, 조금 구석으로 치우친듯한 중앙 오른쪽에는 홍길동으로 보이는 인물이 있다. 

한 마디로 못생겼다. 

튀어나온 광대뼈, 각진턱, 작은 눈은 캐리커쳐의 세계에서 전형적으로 못생긴 얼굴을 상징하는 기호이다. 

마침 두 볼에는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다. 

이는 서자 출신이라 호형호제라고 부르지 못하는 데서 오는 억울함일 수도 있고, 

형과 아우와 달리 초라한 자신의 외모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이 둘 다 일수도 있다. 


이것이 무엇을 위한 광고인지는 그림만 봐도 대충 감이 오지만 맨 아래를 보면 확실하게 정체가 밝혀진다. 

(이런 저런 시비에 얽히고 싶지 않아 일부러 프레임 바깥에 빠져있는) 

그 곳엔 성형외과의 이름과 위치, 연락처가 적혀 있다.


어떤 생각으로 이 광고를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이 광고는 내게 정말 역겹게 다가온다. 

이 광고는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홍길동의 못생긴 외모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만일 이 내러티브가 성립된다면 

홍길동이 세상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된 건 서자라는 사회 시스템으로 인한 출생 신분 때문이 아니라 

못생긴 외모라는 생물학적 이유 때문이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부잣집을 털어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의로운 도적이 된 것도 결국 못생긴 외모 때문이고, 

나라의 질서를 어지럽히며 나의 도적질이 더 나쁜지, 세상의 도적질이 더 나쁜지 질문하는 이유도 

결국 그가 못생겼기 때문으로 치환된다. 


이 내러티브를 뒤집어보면, 홍길동이 만약 성형을 해서 아버지와 형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꽃미남이 된다면 

아버지를 아버지라, 형을 형이라 자신감 있게 부를 수 있게 되고, 그렇게 화목한 가족관계가 회복되면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평불만도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의적도 되지 않았을 거란 이야기도 성립된다. 

여기서 홍길동이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몸짓은 안락하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현재와 대척점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전자는 전적으로 홍길동이 못생겼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 되고 

후자는 홍길동이 잘생기면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일종의 덤이 된다.

이때 이 광고는 속삭인다. 

못생겨서 콤플렉스 갖고 의적이 되는 것보다는 성형해서 잘생긴 외모를 가진 다음 자신감 있게, 

부와 명예를 누리며 사는 것이 훨씬 나은 것 아니냐고. 

당신도 그런 세상에 동참하지 않겠냐고. 

우리가 기꺼이 그렇게 해줄 수 있다고.

이런 광고가 오늘날 등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얼마전 20대가 성형하는 이유로 가장 많이 꼽은 답이 '취업때 유리하기 위해서'였다는 설문조사는 잘 알려져있다. 

외모가 번듯한 직장, 안락한 삶,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는 경쟁력으로 치부되는 세상이다. 

혹은 사람들은 그렇게 믿는다. 또는 버스와 지하철과 거리에 걸려있는 수많은 성형 광고들은 그렇게 말한다.

더욱 우울한 것은 이 광고의 콘셉트가 비단 이 홍길동에게 그치지 않으리란 추측 때문이다. 

오른쪽 아래를 보면 작은 글씨로 '호부호형 못했던 홍길동 편'이라고 적혀 있다. 

다른 시리즈가 계속 나올거란 사실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내일이면 또 어떤 동화와 신화와 전설이 고작 성형을 권유하기 위한 이야기로 각색될까. 

나는 이 광고가 진심으로 끔찍하다.



WRITTEN BY
양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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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가입 환영사

쓰다 2012. 5. 1. 11:09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저는 밥 딜런이 1963년에 발표한 두 번째 정규 앨범 <자유롭게 돌아다니는>을 듣고 있습니다바람만이 아는 노래가 들어있는 바로 그 앨범입니다. 알다시피 이 노래는 사이렌의 목소리처럼 그 시절 젊은이들을 거리로 이끌어 평화와 희망을 꿈꾸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 일부는 기적처럼 현실이 되었습니다. 제가 이 음반을 집어든 이유는 간단합니다기적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기적, 간절히 바라는 소망이 불현듯 이루어질 때


기적. 그것은 어떻게 찾아옵니까. 간절히 바라던 소망이 불현듯 이루어질 때 찾아옵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그렇다면 소망은 어떻게 하면 이뤄지는가라고 물어보는 것은 잘못된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바람만이 아는 대답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방점은 간절히에 있습니다. 오직 그 부분만이 전적으로 우리의 의지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적을 실현시킬 수 있는 실낱같은 희망은 간절함’,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나와 그녀의 맞잡은 손


그런데 이 간절함이란 함께 할수록 진정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이를테면 지난해 겨울 광화문 시위 현장. 겹겹이 에워싼 경찰에 저와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하차도 계단 한가운데 고립되고 말았습니다. 경찰에 밀려 자칫 잡고 있던 손이 떨어질 뻔한 찰나, 그녀는 제 손을 있는 힘껏 쥐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가장 강력한 힘. 절대 이대로 떨어져선 안 된다는 의지. 뼈와 근육을 거쳐 가슴까지 저리게 만든 그 간절함. 그때 갑자기 경찰에 맞받아치기 시작한 사람들. 힘과 힘이 모여 거센 파도처럼 밀어붙인 결과 가까스로 되찾은 차고 맑은 공기. 그리고 그때까지도 놓지 않았던, 땀으로 범벅이 된, 우리의 손. 여전히 숨 가쁘게 쿵쾅거리던 내 심장. 그런데,


긴 겨울, 봄의 간절함 


요즘 우리 주변에 자그만 기적 같은 모습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평소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는 개나리, 진달래, 벚나무의 꽃망울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겁니다. 길었던 올 겨울 추위가 한달음에 달아난 덕분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매서운 추위도 봄의 간절함을 이기지는 못하나 봅니다


기적의 행렬에 동참한 당신을 환영합니다.


우리 역시 기나긴 겨울 터널을 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엄혹한 시절은 이제 곧 끝날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봄을 바라왔던 든든한 후배 7명이 그 간절한 마음을 보태러 여기 모인 까닭입니다. 선배와 후배는 이제 함께 기적을 실현시키기 위해 손과 손을 굳게 맞잡습니다. 그동안 지녔던 외로움과 무거운 짐, 이제는 우리가 함께 나눕니다. 불현듯 잔뜩 움츠렸던 꽃망울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이 아름다운 기적의 행렬에 기꺼이 동참한 후배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들을 환영합니다. 진심으로.



추신: 

위 글은 2012년 4월 19일 새벽에 쓴 글이다. 

YTN 13기 후배들의 노조 가입을 환영하기 위해 썼다.


WRITTEN BY
양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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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한지 20주년이 됐다.
20주년을 맞아 예전에 외부 기고로 썼던 글을 블로그에 올린다.
계간 <대중음악 사운드> Vol.2 / 2011.04~07에 실렸던 글이다.

<대중음악 사운드>는 문화예술전문매체인 가슴네트워크에서 '대중음악 무크지' 시리즈로 기획한 잡지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음악 전문 잡지를 발견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만큼 소중하다는 뜻이다.   

그런 <대중음악 사운드>가 Vol.2에서 특집 기획으로 '한국 대중음악 파워 100'을 선정했다.
가수 뿐 아니라 제작자와 매체, 기관, 단체 등 대중음악과 관계된 모든 것들이 순위의 대상이 되었다.
대중음악과 관련된 평론가와 연구자, 미디어 종사자 등 86명이 설문에 참여했다.

이 설문에서 양현석은 3위를 차지했다.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이 글에서는 양현석이 어떻게 음악 활동을 시작했고,
지금의 위치에 오르게 됐는지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아래 글은 몇몇 맞춤법과 표기법만 수정한 걸 제외하면 원문과 같다.




003.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 나이/단체설립연도 : 196912(음력) / 19963월 현기획으로 출발

- 데뷔연도 : 1992서태지와 아이들멤버로 데뷔.

- 직함/직위 : YG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 선정사유 : 90년대 아이()로 시작해 2000년대 패밀리의 가장이 되다.

 
말하자면 정치적으로 남한의 90년대는 1993, 김영삼 정부가 들어설 때 시작됐다.
음악적인 의미에서 90년대의 시작은 이보다 1년 앞섰다.
그러니까 1992년 봄, ‘서태지와 아이들<난 알아요>가 거리에서 정신없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을 때.
 

그들이 들고 나온 랩과 브레이크 댄스, 힙합 패션은 그 시절 너무나도 낯설거나 파격적이어서
곧바로 토픽이 되었다
. 어른들은 이게 뭐냐며 고개를 흔들었고, 소년소녀들은 바로 이것이라며 열광했다.
음악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놓고 세대는 찢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단순한 트렌드나 유행이 아닌
하나의 현상이었다
. 서태지(와 아이들)은 그렇게 90년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양현석은 바로 여기서 출발했다.

 
우선 모두가 아는 이야기. 양현석은 박남정의 백댄서 겸 안무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솔로 데뷔를 하려던 서태지가 춤을 배우려고 양현석을 찾아왔고, 양현석은 서태지에게
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 그 뒤 양현석은 서태지가 만든 <난 알아요>를 듣고서 팀을 결성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이주노가 들어오면서 팀이 꾸려졌다. 그렇게 해서 서태지와 아이들이 탄생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에서 양현석은 음악적으로는 랩과 백보컬을, 퍼포먼스적으로는 안무와 스타일을 담당했다.
특히 활동 초기에는 이태원을 뒤져 구한 옷들을 직접 찢어 붙이는 방식으로 의상을 준비했다.
노래를 만드는 과정에도 얼마간 참여했는데, 1[난 알아요]<이 밤이 깊어가지만>3[발해를 꿈꾸며]<널 지우려 해>의 가사를 썼다. 그리고 (소문에 의하면) 팀을 꾸린 뒤 노래에 멜로디를 넣으라고 서태지를 설득해 지금의 <난 알아요>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팀명에서 리더의 이름이 들어갈 때 리더와 나머지 멤버 사이에는 큰 간격이 존재한다
. 호명되는 자와
호명되지 못하는 자 사이의 차이
. 이때 호명되지 못한 나머지 멤버는 어쩔 수 없이 소외되는 효과가 생긴다.
그래서 1996131일 팀이 해체됐을 때 양현석(과 이주노)가 앞으로 어떤 길을 갈 것인지는 서태지의 근황만큼 큰 관심사가 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그()아이들이지 서태지가 아니었으니까.
물론 우리 역시 모두가 점성술사는 아니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한 그 해에 양현석은 현기획을 설립해 힙합-댄스 그룹 킵식스를 데뷔시켰다.
자신이 직접 작곡하고 프로듀싱해 내놓은 첫 작품인 셈이다. 하지만 주목 받지 못했다.
그때는 테이프와 CD가 아직 잘 팔리던 시절이었고, 음악 시장은 호황기였다. 인기 노래와 가수가 그만큼 넘쳐났다. 1996년은 김건모와, ‘DJ DOC’, ‘룰라의 해였고, 음반 기획자가 된 이주노의 영턱스 클럽과 강원래 구준엽의 클론’,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돌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SM'H.O.T'가 나온 해였다. 실패를 받아들여만 했다. 


이듬해 양현석은 회사를
‘YG엔터테인먼트로 개명해 흑인 음악 전문 레이블로 변신을 시도했다.
첫번째 결과물로 지누션을 내놓았고, 결과는 괜찮았다. 양현석 자신이 작곡한 <가솔린>으로 팬들의 주목을
이끌어냈고
, 듀스 출신의 이현도가 작사·작곡하고 엄정화가 피쳐링한 <말해줘>가 큰 인기를 얻어
각 방송사의 연말 시상식에서
올해의 가수로 뽑혔다. 힙합 장르로는 이례적인 성공이었다.


그 다음은 예상한 대로다
. ‘지누션다음으로 나온 원타임역시 연달아 히트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소속 아티스트들을 모아
‘YG 패밀리라는 연합 프로젝트 팀을 결성했다. R&B 전문 레이블인 ‘M-Boat’와 손을 잡고 휘성과 거미, 빅마마 등 가창력 있는 가수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2006년과 2009년에는 아이돌 그룹을 등장시켰다. 물론, ‘빅뱅‘2NE1’이다. 이 가운데 빅뱅2000년대 첫 번째 10년 동안 가장 한 팀 중 하나가 되었다.
2007
년과 2008년을 합쳐 빅뱅이 벌어들인 수익만 470억 원이었다. 이 성공은 약간 흥미롭다.
YG
의 스타일과 분위기 때문이다.


YG
SM처럼 미끈하지 않다. 그렇다고 JYP처럼 펑키하거나 섹시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어딘가 쿨하다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여기에는 힙합이라는 하위문화가 풍기는 어떤 정서가 깔려있다.
말하자면 주류문화에 대한 거부와 저항, 혹은 새로운 자리의 주인이 되고 싶어하는 욕망.
실제로 양현석은 빅뱅을 만들 때 관습적인 아이돌 코드를 깨트리고 싶어했다.
빅뱅은 아이돌의 지형도를 새로 그리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지는 힙합이라는 이름의 연대의식
. 다른 소속사들이 계약 문제를 놓고 분쟁을 벌이는 동안에도 개런티 없이 재계약하는 일이 가능한 이유다. 말하자면 마을(SM타운)과 국가(JYP네이션)과 가족(YG패밀리)
차이
. YG는 출연 문제를 놓고 종종 지상파 방송국과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조금 더 복잡한 속내가 있겠지만)
양현석은 소속 가수들을 위한 배려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굳이 미디어에 끌려다니지 않아도 충분히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 (그러나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YG가 끊임없이 코스닥 상장을 시도하는 모습은
선뜻 납득이 되지 않는다
. 주주 자본주의의 가장 큰 맹점이 바로 주주들의 단기적인 수익 분배에 신경 쓰느라
지속적인 상품 개발과 연구에 소홀하게 된다는 점 아닌가
. 하지만 여기에 대해 언급하는 건 내 영역 밖이다.)


가설
. 양현석은 빅뱅서태지와 아이들의 첫 번째 아들이 되길 바랐던 것일까. . 어쩌면, 아마도.
하지만 둘의 다른 점. 서태지와 아이들은 아버지 없이 스스로 자랐다. ‘빅뱅에겐 아버지가 있다.
양현석이라는 아버지. 음악적 아버지 없이 태어나 느닷없이 세상을 놀라게 했던 아이는 어느덧 (YG라는)
가족(과 아내와 딸)의 가장이 되었다. 2009YG의 매출액은 357억 원, 순이익은 41억 원이다.
SM
다음으로 가장 많은 수익이다. 물론 돈이 누군가를 평가하는 모든 잣대가 되기엔 곤란할 것이다.
그는 지금의 역할을 충분히 재미있게 잘해오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보인다.
세상의 질서 대신 당신의 즐거움을 찾을 것.
그것이 서태지와 아이들이 우리에게 주었던 가장 멋진 교훈 아니었던가


WRITTEN BY
양일혁

,
태국 여행길에 음반 가게에 들렀다.
방콕의 시암이란 곳에 파라곤이란 대형 쇼핑센터가 있다. 
우리로 치면 타임스퀘어쯤 된다.
그곳 레코드샵 역시 규모가 꽤 컸다.
살펴보니 한쪽 구역에 케이팝 CD가 진열돼 있었다.
해외 레코드 가게에 K-pop CD가 판매되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꽤 신기했다.

이것이 신기한 이유는 CD 판매가 (공연 수익과 더불어) 실질적인 인기의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실질적이란 뜻은 말 그대로 산업적인 의미에서 자본이 움직인다는 의미이다.
K-pop이 해외에서 인기를 얻는 이유로 흔히 꼽는 것이 유튜브와 SNS이지만,
이는 홍보의 수단일 뿐이지 하나의 산업구조, 수익 모델은 아니다. 
사고 파는 구조가 정착이 될때 K-pop은 하나의 산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리고 K-pop이 산업으로 인정받을때 K-pop은 사실상 한류라고 부를 수 있게 된다.
그렇지 않고서 K-pop이 제2의 한류다, 유럽을 점령했다, 따위의 카피는 그냥 헛소리다. 

고상한 척 문화산업이라고 하지만, 사실 여기서 방점은 문화가 아니라 산업에 있다.
그렇지 않다면 왜 YG가 지난해 주식 상장을 하자 마자 양현석이 그해의 신규 주식 부자 연예인으로 떠오를 수 있겠는가.
어쨌든, 방콕에는 K-pop CD를 팔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우선, 이 레코드샵에는 K-pop 섹션이 따로 있진 않았다.  
POP, ROCK, OST, 또는 NEW RELEASE, 아니면 IMPORTED  BLU-RAY라는 섹션까지 있었지만
K-pop 섹션이 따로 있지는 않았다. 
일본의 J-pop과 중국의 C-pop이 한데 섞여 있었다.





2PM의 명백한 짝퉁으로 보이는 JPM이란 C-pop 보이그룹도 눈에 띄는 부분이었다. 
짝퉁이 존재하기 위한 충분조건이 바로 인기이기 때문이다.
K-pop의 인기가 아시아에서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원형 기둥의 한쪽 귀퉁이에 K-pop만 전시된 구역이 있긴 했다. 
하지만, 이는 정식 섹션이 아니라 프로모션의 성격이 강해보였다. 
실제 수요가 뒷받침 됐기 때문에 이런 진열을 한 것인지, 홍보용인지는 불분명했다. 







그리고 곳곳에서 K-pop 가수가 광고모델이 된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2PM의 닉쿤은 말할 것도 없고, 비스트가 과자 광고를 하는 포스터도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K-pop의 인기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점원에게 물어보았다.
영어가 짧은 탓인지, 원래 성격 탓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한마디 툭 던졌다.
"물론. 저거 안보여?"
그가 가리킨 손가락에는 소녀시대의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마지막으로 사진으로 담진 못했지만 K-pop 진열대에
우리나라 인디 뮤지션의 음반을 발견한 것은 또다른 수확이었다.
내가 발견한 것은 칵스의 첫번째 미니앨범 <Enter> 였다.

태국에서 K-pop은 확실히 하나의 장르로서 인기를 얻고 있었다.
하지만 이 장르는 어디까지나 J-pop이나 C-pop의 또 다른 분류였다. 
이는 해외의 K-pop 팬들에게 어떻게 K-pop을 알게 됐냐고 물었을때 
한결같이 J-pop을 듣다가 알게 됐다고 대답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기도 했다.  

WRITTEN BY
양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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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다.
멧돼지가 자꾸 바다로 가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헤엄을 친다.
누구는 그러다 지쳐서 죽고,
또 누구는 사람들에게 잡아 올려져서 죽음을 당한다.
이래저래 죽는다.


<출처: 연합뉴스>

 
멧돼지가 바다로 뛰어드는데 뾰족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멧돼지는 도망갈때 산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경향] 멧돼지는 왜 바다로 갔을까 (-> 클릭)

숫자는 불어나고,
먹이는 없고, 
그래서 마을로 내려오고,
농작물을 휘젓고,
본의 아니게 사람도 위협하고,
그 때문에 포획꾼에게 쫓기고,
자꾸 달리다 보면 바다가 나오고,
그리고 벼랑 끝에서 내려야만 하는 마지막 선택.
'풍덩.'

<출처: 연합뉴스>

왠지 멧돼지의 신세가 처연해진다.
농작물 피해를 입거나 다치신 분들에게는 죄송스럽지만
그래도 어쩐지 안쓰럽다.
천적이 없어서 개체수가 늘어나는 것이 멧돼지의 잘못은 아니니까.
개체수가 늘어나서 먹을게 부족해지는 것이 멧돼지의 실수는 아니니까.
먹을 것을 찾아 마을로 내려오는 것이 멧돼지의 오판은 아니니까.


<출처: 연합뉴스>

무엇보다도 물에 스스로 몸을 던진다는 제스처.

이 때 묘하게 겹쳐지는 이미지.

한강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  


<출처: YTN>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 동안 
한강에 투신한 사람은 모두 892명이었다. 
이 가운데 375명이 숨졌다.
이틀에 한번 꼴로 투신을 한 셈이다.

그들 가운데
몸을 던지고 싶어서 던진 사람, 누가 있을까.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떠밀리듯 그곳에 온 것 아닌가.
일자리가 줄어들어 직업을 얻지 못하는 것이 그 사람의 잘못은 아니니까.
직업을 얻지 못해 생활이 궁핍해지는 것이 그 사람의 실수는 아니니까.
빚에 허덕이면서까지 무언가를 해보려 애쓴 것이 그 사람의 오판은 아니니까.

그나마 인간은 하소연이라도 할 수 있다.
한강에 뛰어드는 것은 제발 내 처지를 알아달라며 사회에 절규하는 간절한 호소다.
그렇지만 멧돼지의 하소연은 누가 들어줄까.

그들의 고통.
그들의 아픔.
그들의 슬픔.

아니, 어쩌면 우리의 고통과 아픔과 슬픔에 귀를 기울여야 할 사람들이 
눈 막고 귀 막고 있단 점에서 
우리는 결국  멧돼지와 별 차이가 없다면 어떡할 것인가.


WRITTEN BY
양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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