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본 광고이다. 

상단에는 "홍길동이 호부호형을 못 하는 이유는 홍길동의 [ ] 때문이다!?"라고 적혀 있다. 

이유가 설명되어야 할 곳을 괄호로 처리한 것은 그 이유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이유는 시선을 조금만 아래로 내리면 곧 알게 된다. 

중앙과 왼쪽에는 럭셔리해 보이는 3명의 남자가 활짝 웃고 있다. 큰 눈, 오똑한 코, 갸름한 턱을 지니고 있다. 

캐리커쳐의 세계에서 이는 전형적으로 잘생긴 외모를 지칭하는 기호들이다. 

여기에다 어디서 흘러나오는 빛인지 모르겠지만 반짝반짝 빛나기까지 한다.

반면, 조금 구석으로 치우친듯한 중앙 오른쪽에는 홍길동으로 보이는 인물이 있다. 

한 마디로 못생겼다. 

튀어나온 광대뼈, 각진턱, 작은 눈은 캐리커쳐의 세계에서 전형적으로 못생긴 얼굴을 상징하는 기호이다. 

마침 두 볼에는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다. 

이는 서자 출신이라 호형호제라고 부르지 못하는 데서 오는 억울함일 수도 있고, 

형과 아우와 달리 초라한 자신의 외모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이 둘 다 일수도 있다. 


이것이 무엇을 위한 광고인지는 그림만 봐도 대충 감이 오지만 맨 아래를 보면 확실하게 정체가 밝혀진다. 

(이런 저런 시비에 얽히고 싶지 않아 일부러 프레임 바깥에 빠져있는) 

그 곳엔 성형외과의 이름과 위치, 연락처가 적혀 있다.


어떤 생각으로 이 광고를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이 광고는 내게 정말 역겹게 다가온다. 

이 광고는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홍길동의 못생긴 외모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만일 이 내러티브가 성립된다면 

홍길동이 세상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된 건 서자라는 사회 시스템으로 인한 출생 신분 때문이 아니라 

못생긴 외모라는 생물학적 이유 때문이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부잣집을 털어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의로운 도적이 된 것도 결국 못생긴 외모 때문이고, 

나라의 질서를 어지럽히며 나의 도적질이 더 나쁜지, 세상의 도적질이 더 나쁜지 질문하는 이유도 

결국 그가 못생겼기 때문으로 치환된다. 


이 내러티브를 뒤집어보면, 홍길동이 만약 성형을 해서 아버지와 형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꽃미남이 된다면 

아버지를 아버지라, 형을 형이라 자신감 있게 부를 수 있게 되고, 그렇게 화목한 가족관계가 회복되면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평불만도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의적도 되지 않았을 거란 이야기도 성립된다. 

여기서 홍길동이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몸짓은 안락하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현재와 대척점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전자는 전적으로 홍길동이 못생겼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 되고 

후자는 홍길동이 잘생기면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일종의 덤이 된다.

이때 이 광고는 속삭인다. 

못생겨서 콤플렉스 갖고 의적이 되는 것보다는 성형해서 잘생긴 외모를 가진 다음 자신감 있게, 

부와 명예를 누리며 사는 것이 훨씬 나은 것 아니냐고. 

당신도 그런 세상에 동참하지 않겠냐고. 

우리가 기꺼이 그렇게 해줄 수 있다고.

이런 광고가 오늘날 등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얼마전 20대가 성형하는 이유로 가장 많이 꼽은 답이 '취업때 유리하기 위해서'였다는 설문조사는 잘 알려져있다. 

외모가 번듯한 직장, 안락한 삶,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는 경쟁력으로 치부되는 세상이다. 

혹은 사람들은 그렇게 믿는다. 또는 버스와 지하철과 거리에 걸려있는 수많은 성형 광고들은 그렇게 말한다.

더욱 우울한 것은 이 광고의 콘셉트가 비단 이 홍길동에게 그치지 않으리란 추측 때문이다. 

오른쪽 아래를 보면 작은 글씨로 '호부호형 못했던 홍길동 편'이라고 적혀 있다. 

다른 시리즈가 계속 나올거란 사실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내일이면 또 어떤 동화와 신화와 전설이 고작 성형을 권유하기 위한 이야기로 각색될까. 

나는 이 광고가 진심으로 끔찍하다.



WRITTEN BY
양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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