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은 누구일까

쓰다 2013. 2. 28. 14:15

우리 회사 후문 골목에는 조그만 편의점이 하나 있다. 

협소한 곳이지만 회사들이 몰려 있는데다 

주인 아저씨 성격까지 싹싹해 직장인들의 숨통 역할을 해주곤 했다.

담배나 간식 따위를 사며 잠시 바깥 공기를 쐬긴 제격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회사 후문 바로 앞에 건물이 세워지더니 

1층에 새로운 편의점이 들어왔다. 

그것도 기존에 있던 편의점보다 네 배쯤은 큰 크기로.



테이블과 의자까지 번듯하게 갖춰져 있어 그곳은 곧 새로운 휴식공간으로 떠올랐다.

직장인들로 늘 북적였고, 

삼각김밥 같은 물건은 점심시간 무렵이 되면 구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상대적으로 예전의 그 조그만 편의점은 텅텅 비게 되었다.

나름 단골 편의점을 이용하겠다는 나의 결심 조차 언젠가부터 조금씩 무뎌지더니

이제는 습관처럼 새로 생긴 큰 편의점으로 가게 되었다.



예전의 작은 편의점 사장은 애써 내색은 안하려는 눈치였지만 

팍 줄어든 매출에 울상을 짓고 있었다. 



자, 우리가 보아오던 영화나 만화의 장르적인 관습에 따르자면 

새로 생긴 그 큰 편의점은 악당이어야 한다.

자본의 힘을 등에 업고 규모의 경제를 밀어붙이는 악당.

그렇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힘을 합쳐 악당과 싸우고 

작은 가게를 구해내 공동체의 선을 회복해야 한다.



하지만 그건 컨벤션일 뿐. 

컨벤션은 이미 익숙한 구조를 따르기 때문에 즐기는 데 고민이 필요없다.

그것이 컨벤션의 최고의 장점이다.



현실은 전혀 다르다.

무엇보다 당황스러운 건 새로 생긴 큰 편의점 주인 부부 역시 

무척이나 친절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다는 점이다.



안타깝지만 이 현실 세계에서 악당이란 건 성립되지 않는다.

선한 이웃만 있을 뿐.

그들은 다만 자기가 지니고 있는 총알을 밑천 삼아 먹고 살기 위해 일할 뿐이다.

그들은 최선을 다하면 (신의 뜻에 따라) 성공할 거라는 프로테스탄트적인 윤리를 

각자의 방식대로 열심히 실천하는 중이지만 

문제는 그 노력들이 이웃끼리 경쟁의 톱니바퀴가 되어 승자와 패자를 가르고

누군가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나의 반문.

왜 선한 이웃들이 열심히 사는데 누구는 웃고 누구는 울어야 할까.

이런 세상은 공정한가. 

나의 대답. 

아니오.

이런 결과라면 그런 결과를 낳는 원인이 있을 것이다.

악당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진정한 악당이란 바로 이런 결과를 낳는 원인이란 녀석이 아닐까. 

그렇게 치자면 우리는 한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참으로 거대한 녀석과 상대해야 하는 셈이다.

즐거운 일은 아니다.


WRITTEN BY
양일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