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문화면이 대부분 할리우드에 간 김지운의 인터뷰로 채워져 있는 가운데 드물게 왕자웨이에 관한 기사도 실렸다. 

기사를 보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영화엔 세가지가 없다. 스턴트맨, 와이어액션, CG. 그런 것들을 쓴다면 쿵후 영화일 뿐이다." 


행간으로 미뤄보건데 왕자웨이가 찍고 싶은 건 쿵후가 아니라 무협이었나 보다. 

10년 전 와호장룡이 사람들 눈을 홀리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을 때, 


허우 샤오시엔은 단칼에 그 영화는 사기라고 말했다.

씬에서 보여지는 중력의 세계가 서로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뒤 중국과 홍콩, 대만의 트라이앵글 속에서 각각 빛나는 성취를 보여준 


지아 장커와 왕자웨이, 허우 샤오시엔이 모두 무협 영화를 준비중이란 소식이 들렸다.

나는 그들이 찍은 무협 영화를 보고 싶어 목이 빠지게 기다렸는데 


거의 10년이나 지나서야 왕자웨이가 무협 영화를 들고 나타났다.



생각해 보면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주변을 흐르는 시간이란 중력의 무게를 거슬러 올라가고 싶어했다. 


머리에 떠오르는대로 복기해보면,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에서는


키스와 타르트의 달콤한 모습이 언제까지 지속 가능할까 내기라도 하듯 그 둘이 중첩되는 모습을 반복했고, 


<중경삼림>과 <타락천사>에서는 스텝 프린팅으로 영화 속도의 표준을 거슬러가려 했으며,

<2046>에서는 (아마도) 문화혁명 시기 홍콩과 80년 뒤인 2046년의 SF 사이를 시침 뚝 떼고 오고갔다.

그리고 이제는 거의 모든 영화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스턴트맨과 와이어과 CG 없이 액션을 찍었다.

이번에도 영화 환경을 둘러싼 시간이란 중력의 무게를 다시 한번 거스른 것이다.

그의 영화 속 중력의 세계는 어떤걸까.



베를린영화제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한 기자는 물었다. 

(링크된 페이지에서 맨 처음 올라온 동영상을 찾아보면 나온다.)


"영화 작업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도전은 무엇이었습니까."


(내가 이해한대로 번역해보면) 왕자웨이는 (이렇게) 답했다.




"제게 가장 큰 도전은 전 무예를 할 줄 모른다는 점입니다. 


제가 무예 팬이어서 쇼나 소설이나 영화를 보긴 했는데


이번 여정에서 저는 직접 해본 적 없단 사실이 무척 아쉬웠습니다.



사람들은 무예를 폭력이나 무력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3년 동안 나이든 무예의 대가들을 만나면서 저는 무척 놀랐습니다. 


그들은 사실 매우 겸손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은 쿵후가 스포츠 아니면 건강이나 챙기는 요가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관점에서 쿵후는 사람 목숨을 뺏거나 지키는 무기입니다. 


제가 만나본 고수들은 모두 겸손하고 점잖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 손에 무기가 있단 사실을 매우 잘 알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면 한 어린 소년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창문을 통해 교실 속을 바라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건 저 자신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과거에 그런 경험이 있었으니까요.



동시에 영화 감독으로서 저 일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를 막 시작하는 저 자신 말이죠.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난 뒤의 저 자신이기도 합니다. 


이 여정은 무척이나 흥미롭고 다양한 층들로 이뤄져 있었습니다. 


저는 할 수만 있다면 여기에 시간을 더 쏟고 싶었습니다."



할수만 있다면 무예에 대한 배움에 시간을 더 쏟고 싶길 소망했다는 왕자웨이.


그가 이번에 주조한 시간의 중력은 어떤 쾌감을 불러일으킬지, 


두근거리며 기다려 본다. 




WRITTEN BY
양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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